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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 밤중에 컴퓨터와 씨름을 했다. 자꾸만 이유를 알 수 없는 오류들이 여기저기서 발생하는데 짐작되는 원인은 없었다. (컴맹이라 진단하기도 힘들지!) 포맷한지가 꽤 오래 되었기 때문에 그 간의 사용으로 인한 프로그램들 끼리의 충돌인가 싶기도 해서 이 참에 시원하게 밀어버리기로 결정했다. 아직 잠도 안오는데 깔끔하게 밀어버리고 상쾌한 기분으로 자야지!!! 정말로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포맷이었다. 금방 끝나겠거니 싶어 시작한 포맷이었다.
그렇게 포맷 과정을 진행 시키는데 생전 처음 보는 오류와 맞닥뜨렸다.
"이 디스크에 windows를 설치할 수 없습니다. 선택한 디스크에 mbr 파티션 테이블이 있습니다. efi 시스템에서는 gpt 디스크에만 windows를 설치할 수 있습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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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뭐라고요? mbr? efi? gpt? 이게 다 뭔 소리야? 기존에 윈도우10이 깔려있던 SSD는 포맷으로 밀어버렸는데, 그 SSD에 못깐다고? 다른 하드디스크 파티션들도 죄다 저 에러가 뜨네? 그럼 내 컴에 윈도우10을 깔 수 있는 디스크가 단 하나도 없단 소리잖아? 이게 말이야, 똥이야?
덕분에 오밤중에 컴맹 패닉을 일으킬 뻔했다. 마음을 비우고 날이 밝으면 조립PC 인생 처음으로 컴퓨터기사님을 불러야되나 싶었다. 윈도우를 날려버렸는데 윈도우를 그 어떠한 디스크에도 설치할 수 없다는 오류가 떴으니 어디부터 손을 봐야 될지 아득해지더라. 늘 내가 겪어본 적이 있는 문제 상황이 발생하는 것도 아니고, 컴퓨터 조립할 때라든지 오늘과 같이 인터넷에 접근할 수 있는 '컴퓨터 자체가 망가진' 상황에서 나는 무력하기 짝이 없는 컴맹이다.
컴맹이 느끼기엔 이런 상황이었다.
와르르 무너질뻔한 멘탈을 부여 잡고 나에겐 스마트폰이 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우리 집에서 컴퓨터를 관리할 사람은 순전 나 한명 뿐이었고, 주변에 딱히 컴고수 친구도 없어서 이날 이때껏 온갖 컴퓨터 오류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해결법을 차근차근 따라하며 해결해 왔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런 저런 컴퓨터 배경지식도 많이 늘었다. 10년쯤 전이었다면 컴으로 인터넷도 안되니 얄짤없이 전화기 들고 겸허한 마음으로 컴퓨터센터 번호를 누르고 있었겠지만 지금은 마음만 먹으면 광대한 네트워크의 바다가 내 조그만 손 위에서 펼쳐지는 시대가 아닌가? 전화기 번호를 누르는 대신 침착하게 스마트폰 키패드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다행히 컴고수분들의 해결방법들이 올라와 있었고 무사히 윈도우 재설치를 마쳤다.
여기서 끝났다면 해피엔딩에 이미 자러 갔을 터지만 이번엔 메인보드 드라이버가 문제였다. 각종 내 기기에 맞는 드라이버와 내가 사용할 소프트웨어를 설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인터넷 접속이 우선되야 하는데, 인터넷 접속을 위해선 우선 LAN카드 드라이버의 설치가 필요했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과 함께 거의 쓸 일이 없어서 굳게 닫혀 있던 ODD가 이번엔 말썽이었다. 메인보드 구매하면 기본으로 같이 오는 CD에 칩셋드라이버부터 LAN, 딱히 쓸 일이 없는 내장오디오(리얼텍)카드 드라이버까지 모~두 들어있는데 정작 이놈의 ODD가 입을 안 벌린다. OPEN 버튼을 눌러봐도 컴퓨터에서 꺼내기 명령을 클릭해봐도 꿈쩍도 않는다. USB 메모리의 시대가 온 것에 대해 크나큰 배신감을 느끼고 단식투쟁이라도 들어간 것인지 요지부동이다. 순간 머리에 진땀이 나고 아랫배가 살살 아파올 기미가 느껴졌다. 내가 오밤중에 포맷도 모자라서 드라이버 들고와서 컴퓨터를 뜯어야되는 것인가... 추석마무리를 컴퓨터 본체와 함께 달맞이 체조라도 하게 되겠구나 싶었다. 그러다가 다시금 깨달았다.
포맷하며 생긴 문제해결법을 인터넷으로 검색했으면서 필요한 드라이버를 다운 못 받을건 뭐람? 필요한 드라이버를 스마트폰으로 다운받은 다음 USB연결해서 옮겨주기만 하면 끝인 것을. 남이 보면 무슨 개그프로그램의 바보들의 대행진쇼를 보는 것 같았겠지만 저 생각이 떠올랐을 때 나는 무릎을 탁치며 이런 생각을 떠올린 나 자신을 기특해 했다. 내 발상은 다행히 문제없이 잘 먹혀들었고, 필요한 프로그램들까지 설치를 모두 완료하고 나니 잠을 자기엔 창밖이 너무 밝아졌기에 수면을 포기하고 이렇게 이 글을 끄적이고 있다.
비단 오늘의 해프닝만이 아니더라도 근래엔 밖에서 급하게 정보가 필요할 때, 티켓팅이나 예약을 해야만 할 때 등등 사소한 일상 하나하나를 처리하는데도 스마트폰의 도움에 의존하게 된다. 스마트폰이 보편화 된지도 겨우 한 10년쯤 됬고, 쓰면서도 속 안터질 속도를 갖추게 된 건 몇년도 지나지 않은 이야기인데도 이렇게 일상에서 없으면 안될 존재가 되어버렸다는 것이 새삼 소름끼칠 정도로 놀랍다. 앞서 언급한 인터넷 기능 외에도 간단한 문서 작성, 디지털 카메라, MP3플레이어와 PMP, 신용카드, 휴대용 게임기, 보안 인증기 기능 등등 현재도 끊임없이 저변을 넓혀가며 삶에 샅샅이 파고 들고 있는 중이란 건 덤이다. 하룻 밤 새에 내가 미처 다 이해하지도 못한 수많은 기능들이 스마트폰에 추가 되고 있다. 그러다보니 내가 이 스마트폰의 성능을 제대로 활용하고 있긴 한걸까 싶다. 컴맹도 모자라 내가 폰맹이라니...
전에 어디선가 '당신의 스마트폰은 스마트합니까?'란 질문을 본 적이 있다. 흘려 들었던 그 글귀가 지금 와서야 떠오른다. 내 폰은 바보폰이란걸 지금에야 인정해서 그런걸지도 모르겠다. 컴퓨터는 모르는게 있으면 열심히 인터넷을 뒤져가면서 컴맹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고자 노력했으면서 스마트폰은 그저 까똑머신 취급하며 스스로 폰맹의 길로 들어섰다. 요새 스마트폰 가격인 70~100만원이면 어지간한 조립형PC 한대 값인데 정작 쓰는 내가 폰맹이니 참 호사스런 장난감이 따로 없다.
- https://msdn.microsoft.com/ko-kr/library/dn336946.aspx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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