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발더스게이트3는 명작일 수 밖에 없다.
    게임 이야기/게임 일지 2024. 2. 15. 20:57

      가상의 세계, 가공의 환경을 간접체험하는 여가 활동으로는 독서 그리고 영화 마지막으로 게임 등이 있습니다.
      독서의 매력 중 하나는 문장으로 서술된 내용을 바탕으로 머리 속에서 무제한적인 상상의 날래를 펼치는 재미가 있다는 점일 것입니다. 영화는 우리가 상상 해왔던 것을 시각적으로 구현해줌으로써 만족감을 느끼게 해준다는 장점이 있구요. 영화와 독서와 비교해보았을 때 게임은 어떨까요? 앞서 말한 두가지와 비교해 보았을 때 가장 결정적인 차이점은 이야기의 서사에 있어서 내가 그 일부가 되느냐 아니면 작품 밖의 방관자일 뿐이냐의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책도 영화도 내용은 정해져 있고 우린 그저 지켜보는 것 외에는 어떠한 간섭도 할 수 없습니다. 남일처럼. 게임은 다르죠. 결말이 정해진 게임이라고 해도 나는 그 결말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 함께할 수 있으며, 결말이 다양한 게임이라면 나의 결정, 실수 등의 행동이 스토리에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때문에 비록 시각적인 요소는 이미 제공되어 상상력이 제한 될 수는 있으나 작품에 대한 몰입도와 주인공에 대한 일체감은 독서, 영화와 견주어 보았을 때 이점을 가져가기 좋겠죠?

    내가 한 모든 선택과 결정은 가치가 있었다. 이 이야기 속에서.

      하지만 게임에서 이런 이점을 잘 살리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해왔던 게임들을 돌이켜보아도 대단한 몰입도를 주는 작품은 몇 없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런 명작이 쉽게 나오진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게임을 접할 수많은 사람들이 내릴 무궁무진한 선택들(변수)과 그에 따른 나비효과와 같은 결과들을 상대적으로 소수에 불과한 게임 회사 직원들이 게임 속에 모두 담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어설프게 구현하게 되면 마치 잘못 기워 입은 옷처럼 어색하고 불편한 족쇄가 되서 게임과 유저 사이에 이질감만 느끼게 해주는 요소가 되어버리구요.
      자주 우스갯소리처럼 언급되는 '잠긴 문'에 대해서 잠시 떠올려보면 이 표현력이 부족한 글을 읽더라도 제가 전달하고자 하는 느낌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문 앞에 놓인 '잠긴 문'을 두고 문을 물리적으로 부술 수 있는 충분한 장비를 갖추었음에도 암묵적인 게임 규칙에 따라 멀리 돌아가야 하는 부조리함에 직면했을 때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어지는 지를 떠올려 보면 벌써부터 속에 고구마가 얹힌 듯 답답해져 옵니다. 그렇다고 모든 '잠긴 문'을 탐험할 수 있게 해주면 게임이 산만하게 전개될 수도, 그 모든 내용물을 준비하는 게임 제작자의 입장에서도 큰 부담이 될 수도 있겠지만요.

    사놓고 바빠서 못하고 벼르고만 있다가 드디어 시간내서 엔딩까지 쭉 내달렸습니다.

      이렇듯 유저의 자유의지를 얼만큼이나 게임에서 수용해주며 몰입감을 높일지 그러면서 스토리의 전개가 산으로 가버리지 않게 어느정도 통제할지 그 절묘한 타협점을 잘 짚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그 어려운 것을 발더스게이트3는 해냈습니다.
      골칫거리에 직면해서 해결 방법을 찾든, 대화 중 어떤 응답을 할지 고민하든 어떤 상황에서든지 내가 생각해봄직 한 선택지들이 대체로 게임에 갖춰져 있다는 것은 즐거운 경험이 었습니다. 마치 음식점에 가서 제공 받은 메뉴판에 내가 고려해봄직한 메뉴들로만 가득차서 메뉴판 외의 음식은 떠올릴 필요가 없듯 말입니다.

    지금 즉시 이성 주입.

      등장인물들과의 대화도 내용이 흥미로워 놓치지 않고 챙겨 보게 되었습니다. 영양가 없는 대사가 길게 이어지는 게임에서는 대충 요점만 파악한 후 빠른 게임 진행을 위해 스킵하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발더스 게이트3에서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이 소통하는 내용들은 게임 진행을 위한 중요한 힌트가 있기도, 해당 인물의 개성이 온전히 드러나기도 하는 등 늘 즐거운 대화 경험을 선사해주었기에 놓치기에 너무나 아쉬운 내용들이었습니다. 심지어 그것이 잠시 스쳐지나가는 팝업(?) 대사라고 할지라도요.

    뭘 먹 ㅇ....?

      마지막으로 발더스게이트3는 시리즈의 세번째 후속작으로써 전작을 플레이해 보았던 유저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요소도 빼먹지 않고 들어가 있어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그렇다고 이번 작을 계기로 처음 입문한 분들에게 소외감을 줄 정도의 무맥락 등장이 아닌, 충분한 설명을 곁들인 자연스러운 등장과 이스터에그성 등장이 같이 버무려져 있어 만족스러웠습니다. 전작을 플레이 해본 사람에겐 반가움이, 처음인 사람들에겐 전작에 대한 호기심이 마음속에 일어날 수 있게요.

    이것은 마치 아이돌 존안을 직접 본 팬클럽과 같은 반응

      그럼에도 다소 다른사람에게 마구 추천하기에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다면 여전히 게임의 진입장벽이 낮지 않다는 점입니다. 발더스게이트 시리즈는 던전앤드래곤이라는 trpg의 규칙과 세계관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게임이기 때문에 요즘 게임의 간단하고 직관적인 스탯 표기와 클래스별 특징에 익숙해져 있는 유저들에겐 다소 생소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전작에 비해서는 많이 개선되었지만 그럼에도 발더스게이트의 세계로 들어오게되면 한동안은 뭐가 되긴 됬는데 왜그렇게 됬는지 몰?루를 여러번 경험하며 시행착오를 많이 겪게 될 겁니다. 진입장벽이 높다고 겁주려는 건 아닙니다. 우리에겐 세이브&로드 신공이 있으니까 그런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게임의 시스템에 대해 이해가 깊어지면 그때부터는...

    넌 쥐뿔도 가망이 없다란걸 그냥 좋게 말로 해주면 되잖어.

      엔딩까지 140시간 넘게 걸린 게임이었지만 이 140시간은 역할놀이 중 겨우 한가지 역할을 체험해본 것에 불과해서 또다른 개성과 또다른 성격을 지닌 새로운 모험을 시작할 마음이 가득합니다. 마음은 가득한데 한동안은 시간이 없다는게 아쉬움이지만 언제고 다시 꺼내어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길 게임이란 것이라 확신하게 됩니다. 부가 당신을 그리워 할겁니다... 분명히.

    아니야, 형 그거 아니야.

     

본 블로그의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 4.0 국제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